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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방은 일제치하였던 1919년, ‘京城紡織株式會社’로 출발했습니다. 경성방직의 설립은 우리 산업사, 더 나아가서는 경제사 측면에서도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경방보다 역사가 더 오래된 기업이 몇 있지만, 일부는 일본 자본으로 세워졌거나 영세한 개인기업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설립된 대규모의 기업들 조차 은행·철도·운수·농수산 등의 서비스업이나 기간산업이었던 데 비해 경성방직은 면방직이라는 제조업을 택하여 우리나라 근대산업사상 제조업의 효시를 연 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경성방직은 명실상부한 우리 민족자본에 의한 최초의 근대기업이라는 경제사적 위치를 점하기에 충분하고 또한 1인 1주 운동으로 전국적인 주식공모에 의해 기업을 일으킨 것은 더욱 뜻이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경성방직’이라는 이름으로 한국기업 역사의 시작을 알리며 근대산업사에 기록되었던 경방은, 급변하는 경제환경에 발맞춰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자 1970년 7월, 한글표기인 ‘경방’으로 회사명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1919년, 당시의 자본가들이 고리대금업 등으로 부를 축적하고 있을 때 경방의 설립자 인촌 김성수는 이른바 ‘1인1주 운동’을 벌여 경성방직을 설립하였습니다. 김성수는 손쉽게 자본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도 주식 2만 주를 발행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주식을 모집했고, 당시 주주 1백88명의 참여 속에 경방을 설립했습니다. 한 개인이나 몇몇 소수인의 형식적인 주식회사가 아닌 전 민족의 회사로 만들겠다는 신념이 우리나라 최초의 명실상부한 민족기업이요, 공개법인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진정한 의미의 주식회사로 국내 최초라 할 수 있는 경방은 국내 1호 상장회사라는 타이틀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경방은 국내 최초로 1956년 3월 3일 회원번호 ‘001’로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습니다.

한편 인촌 김성수는 민족기업 경방을 설립한 이후에도 1920년 <동아일보>를 창간해 민족 사상을 고취하는 데 힘썼고, 1932년에는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普成專門學校를 인수, 교장에 취임해 1946년 종합대학인 ‘고려대학교’ 창립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용인공장은 해방 이후 경방 최초의 분공장으로 최신의 설비를 도입, 첨단 방직공장으로 설립되어 국내는 물론 일본의 방직공장보다 우위를 점하기도 하였습니다.

용인공장은 1974년 1차증설이 완료되어 방기 31,104추, 직기 504대의 전천후 생산기지로 거듭 태어났으며, 3차 증설이 완료된 후에는 방기 93,312추 직기 924대의 위용을 지닌 경방의 주력 상산 공장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용인공장은 증설 이후 2000년대에는 복합사를 주력 생산품으로 변경하고 2006년 11월에는 직포공정을 폐쇄하는 등 시대적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여전히 경방의 주력공장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영등포공장에서 기반을 닦은 가공사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1984년 반월염색공단 안에 건설된 반월공장은 제품의 고부가가치 시대를 연 경방의 세 번째 공장이 되었습니다.

1983년 공장부지를 확보한 이후 여러 난관이 뒤따랐지만 이를 모두 극복하고 1984년 비로소 준공에 이르게 됩니다. 준공 이후 지속적인 설비 개체 및 기술 축척을 이뤄 고객이 원하는 품질을 구현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가공사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1988년 준공된 코마사 전문 생산공장인 광주공장은 최신의 자동화 설비를 갖춘 명실상부한 최신공장으로 경방의 1990년대를 열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수출물량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준공 당시 첨단시설로 문을 연 광주공장은 이후 2009년 최신의 자동화 시설로 재무장한 최첨단 공장으로 재탄생되어 고품질의 코마사 전용공장으로 거듭났습니다. 무인공장이라고 할 만큼의 자동화시설로 이뤄진 광주공장은 경방의 21세기를 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7년 7월 경방은 신세계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경방필백화점의 운영을 2007년 12월부터 향후 20년 동안 신세계백화점에 위탁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계약으로 경방필백화점의 운영은 신세계백화점이 맡게되고 경방필백화점의 소유권과 경영권은 경방이 그대로 보유하게 됩니다.

경방필백화점은 그동안 단일점포로서 겪어야 했던 A급 브랜드 유치의 어려움과 높은 수수료 지급, 각종 프로모션 등을 통한 수익성 약화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경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계약으로 경방필백화점은 2008년 2월말에 백화점을 폐점하고 3월부터 두 백화점 사이의 연결통로 설치와 매장 단일화 등 본격적인 리뉴얼 공사에 착수했으며, 2009년 9월에는 타임스퀘어 오픈에 맞춰 ‘신세계 영등포점’으로 새롭게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경방의 새로운 백년을 이끌어 갈 타임스퀘어 건설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2006년부터였습니다.

2001년 말 공장부지 재개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고 2002년 6월 22일에는 서울시에서 서울의 4부도심(용산, 영등포, 왕십리, 영동) 중 하나로 영등포지역(문래동, 영등포동, 도림동, 당산동 일대)을 서남권의 광역중심지로 육성키 위해 부도심 지구단위계획으로 결정고시함에 따라, 경방에서는 2005년 10월 6일에 정림건축과 K-Project에 관한 설계용역을 체결하는 한편 10월 12일에는 (주)한미 파슨스 건축사무소와 K-Project에 관한 CM 및 감리용역 계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23일 서울시 의회에서 원안통과를 마침에 따라 2006년 4월 20일에는 GS건설을 건설 시공사로 선정하면서 제 2단계 K-Project 사업은 본격적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이런 일련의 주요 사안들이 발생하는 2006년은 경방이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한 지 50주년(회원번호 001)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